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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뉴스 꼴찌 전전하다 고3 때 수직 상승, 그 비결은
2024-12-10 16:26:51
배창희 조회수 1376
수능 치른 제자의 성공담
 
뜬금없긴 하지만, 이번에 수능을 치른 제자의 '성공담'을 공유하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았다. 비록 '땀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뻔한 이야기지만, 교육이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지난한 과정임을 함께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안에서 알을 쪼는' 학생과 동시에 '밖에서 알을 쪼는' 교사가 없다면, '껍질을 깨트리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는 법이다.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까지 벌이는 이 와중에 무슨 수능 미담 사례냐고 힐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국에 무너진 공정과 상식이 회복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드는 주체는 미래세대 아이들일 수밖에 없다. 그들을 올곧은 민주 시민으로 성장시키는 건,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며 당위다.
 
고1 담임으로서 승규(가명)와의 첫 만남은 불편함을 넘어 불쾌하기까지 했다. 훤칠한 외모와는 달리 매사 삐딱했고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가 내게 처음 건넨 말도 졸업한 중학교에 대한 거친 험담이었다. 같은 중학교에서 배정된 친구도 거의 없어 학기 초 그는 교실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지냈다.
 
성적도 최하위권이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학급 내에서는 물론, 전교에서도 뒤에서 헤아려도 다섯 손가락이면 충분한 꼴찌였다. 학과 공부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고 선선히 말했다. 상담할 때마다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이야기만 반복했다. 그에게 인문계고등학교로의 진학은 누가 봐도 잘못된 선택이었다.
 
어머니와의 상담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의 바람은 단 두 가지였다. 승규가 학교에서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즐겁게 생활하는 것과, 공부 못한다는 이유로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여느 부모라면 열심히 공부하도록 독려해달라고 했을 테지만, 그는 그것이 승규의 학교생활을 방해하지 않으면 족하다는 투였다.
 
위태로워 보였던 아이
그런 승규에겐 꿈이 있었다. 패션모델이 되고 싶다는 것. 그의 타고난 외모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진로 같았다. 키는 컸고, 몸은 말랐으며, 얼굴은 누구 말마따나 'CD판'만 했다. 또래들조차 요즘 모델이 갖춰야 할 조건을 빠짐없이 지녔다며 부러워할 정도였다. 시샘이 지나쳤는지, 그에게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 '대벌레'였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데 학교 교육과정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수업 시간에 교과서를 챙겨오지 않는 건 기본이고, 내내 엎드려 잠자기 일쑤였다. 그럴수록 성적은 더욱 곤두박질쳤고, 점수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그의 '의연한' 생활 태도에 모든 교과 담당 교사가 혀를 내둘렀다.
 
그는 꿈을 무의미한 학교생활의 도피처로 삼는 듯했다. '뭐든 하다 안 되면 모델 아르바이트나 하지'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고 다녔다. 강퍅한 성정과 매사 삐딱한 태도는 그의 꿈마저 비루하게 느껴지도록 했다. 여느 '문제아'들처럼 사고뭉치이거나 무기력하지는 않았지만,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무동력선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방황하던 그를 멈춰 세운 건 한문(漢文)이었다. 한문은 실상 그의 꿈과도 무관하고 대입에서도 필수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 교과다. 대개 인문계고등학교에서 한문은 음악, 미술, 체육 등과 함께 교양 교과로 분류되어,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에겐 거추장스러운 존재다. 듣자니까, 그냥 자습 시간처럼 운영되는 학교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문 교사는 학과 공부에 마음이 떠난 그의 '한량 끼'에 주목했다. 그가 일찌감치 공부에 손 놓은 건, 이른바 '공부 머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학교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낮은 자존감 때문이라는 점을 간파했다. 어차피 대입에 별 관심이 없는 승규에게 그는 한문 수업이 휴식 삼아 즐길 수 있는 취미 생활로 여겨지도록 힘을 뺐다.
 
한문 수업은 그림 같은 한자로 구성된 게임이었고, 글귀 속의 교훈을 활용한 개별 상담이었다. 승규는 이내 재미를 붙였고, 일주일에 달랑 한 시간뿐인 한문 수업을 손꼽아 기다렸다. 한문 수업이 든 요일의 표정은 여느 날과는 확연히 달랐다. 시나브로 그의 교과서와 공책, 스마트폰과 태블릿피시에는 한자로 된 사자성어가 마치 이름표인 양 적혔다.
 
'士爲知己者死(사위지기자사 :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지난 11월 11일에는 내게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이 구절을 포장지에 직접 쓴 막대형 과자를 선물했다. 여기서 '사(士)'는 승규 자신을, '지기자(知己者)'는 한문 교사를 뜻하는 걸로 읽혔다. 되바라진 그를 끝까지 믿고 응원해 준 교사를 향한 더없는 상찬이었다. 덩달아 나까지 덤으로 찬사를 받게 되어 민망하면서도 한편으론 어깨가 으쓱했다.
 
드디어 그는 2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발동이 걸렸다. 주위에선 고등학교 생활의 절반도 넘게 지난 때라 수능을 준비하기엔 이미 늦었다고 했지만, 그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대입 준비는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해준 한문 교사의 은혜에 보답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로 하는 공부에 거칠 건 없었다.
 
이후론 '뭐든 하다 안 되면 모델 아르바이트나 하지'라는 말은 더 이상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대신 대입 준비 역시 그의 꿈을 향한 과정의 하나라고 대견스럽게 말했다. 승규의 '개과천선'에 또래 친구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미동도 없이 공부할 때 그의 눈빛을 보면 살기마저 느껴진다며 하나같이 놀라워했다.
 
고3이 되자 성적이 수직 상승
 
고3이 되자 그의 성적은 수직 상승했다. 이젠 누구도 고1 때 꼴찌를 전전하던 승규의 과거를 떠올리지 않는다. 대입과 내신 등급, 모의평가의 난이도 등에 대해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어엿한 중상위권이 되었다.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는 또래 친구들 앞에서 겸손해하는 그의 표정에선 여유마저 느껴진다.
 
수능 성적 통지표가 배부된 지난 6일 아침, 승규는 한달음에 달려와 내게 자신의 통지표를 보여주었다. 막판 뒷심이 부족해 아쉬웠다면서도 4등급 밖으로 떨어진 영역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탐구 영역에서 1등급을 찍은 덕분에 합산 성적이 3점대 초반인 나름 준수한 결과였다.
 
승규의 꿈은 그대로다. 달라진 게 있다면, 2년 전에는 '그냥 패션모델'이었고, 대학 진학을 앞둔 지금은 '뇌섹남 패션모델'이라는 점이다. 그의 입을 통해 공부하는 게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그의 변화된 모습을 통해 교육의 '힘'을 절감했다. 나아가 '교육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진리도 새삼 곱씹게 된다.
 
끝으로, 아이의 잠재된 역량을 믿음과 지지로 끌어낸 동료 한문 교사에 대한 고마움을 전한다. 아울러 승규에게도, 당일엔 표현하지 못했지만, 한자 성어까지 적어 건넨 막대 과자를 받고 울컥했던 내 마음도 함께 전한다. '승규야, 네가 나의 제자여서 정말 행복하다. 네가 나의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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